Delicate Traces

2020, "Delicate Traces" solo exhibition, Woosuk Gallery, Seoul, South Korea

피부를 되찾는 방법

최새미

겹겹의 레이어로 이루어진 이 표면들은 명백히 피부일 것이다. 물론 작가가 그것이 피부를 가르킨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이것이 정답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다. 그저 경험적으로 그리고 직관적으로 그렇게 추리하게 된다. 어디서 본 듯하다는 느낌, 그래서 피부가 아니겠냐는 이 추측은 사실 바깥의 세상을 관찰해서 얻은 경험, 정보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니다. 세상 바깥과 미디어에는, 이렇게 그로테스크적인 피부는 거의 없다.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있고 없고를 떠나 선망받는 피부는 아주 매끄럽고 고운 피부이니까. 매끈하고 싱싱한 피부는 아무런 표식도 찾을 수 없어서 비약하자면 전체가 하나의 여백, 빈 공간으로 느껴지기 까지 한다. 그럼에도 내가 여백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 겹겹의 레이어들을 분명 피부라고 확신하게 된 이유는 나의 피부가 그러한 피부이기 때문이고, 세상을 관찰하고 미디어를 보고 있는 우리의 피부가 그러한 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3인칭 관찰자로서 세상 바깥을 살펴본 결과가 아니라 나 자신의, 1인칭 시점으로 나의 신체를 경험한 결과를 가지고 이 전시를 추리하고 있다.


관찰을 하기 위해서는 말그대로 관찰을 가능하게 하는 관찰자의 신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3인칭-관찰자 시점에서는 눈으로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나-관찰자의 신체는 누락된다. 아무도 관찰자의 신체에는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까닭으로 매일같이 동행하는 스스로의 신체임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에서 만나는 이 피부들은 익숙한듯 하다가도 낯설고 생경하다. 그 이유가 단지 과장되어 표현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 모두 하루하루 온통 과장된 정보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한 사실을 조금 비웃는 것처럼 바닥에 넓게 펼쳐져있는 작품은 감상자로 하여금 조금 더, 조금도 가까이 다가올 수 없게 한다. 말그대로 바닥에 펼쳐 놓아져 있으므로, 가장자리를 에둘러 돌아다니며 살펴볼 수 있을 뿐 그 가운데까지 밟고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세상 바깥으로 출현한 이 그로테스크한 진짜 피부에 대하여 이렇듯 거리감을 유지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이 장치가 참 시니컬하다. 이것은 또한 징그럽다, 는 말로 이 전시의 감상을 중지하는 것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매끈함과 반대로 온갖 자극으로 가득한 이 표면들. 까끌까끌하고 울룩불룩하고, 찢겨올라가고 타들어간다. 그러한 감각은 영상 속 폰트의 모양새로까지 이어진다. 글씨의 획 끝에 돌출, 삐침을 가지고 있는 이 세리프 형식의 폰트는 세상바깥의 매끄러운 피부와 달리 갖가지 변화-상처, 두드러기, 기미, 건조함, 건선, 피지 등-로 한시도 심신을 가만두지 않는 내 피부처럼, 볼 것 없이 평평하고 까만 화면을 계속해서 찌르고 긁어낸다. 그와 함께 목구멍을 긁는 듯한 거친 소리가 섞인 네덜란드어 더빙 사운드는 그러한 자극과 변화, 그로 인한 흔적 남기기를 계속해서 권유하는듯 하다. 다시 처음의 여백뿐인, 빈공간일 뿐인 선망받는 매끈하고 싱싱한 피부로 돌아가서. 어차피 그건 나의 몸도 아니고, 작가가 말하듯 영역 표시를 해서 나의 몸으로 되찾아오고 싶다는 어떠한 끌림을 느낀다. 그것은 매끈한 세계로부터 밀려난 나의 신체를 나의 눈 앞으로, 세계 앞으로 끌어당겨 놓고자 하는 열망이고, 내 피부 위로 살아왔음을 증거하는 모든 표식들을 긍정하고자 하는 다정한 마음이기도 하다.

 

​출처: 미주알 고주알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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