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을 겪었던 시간이 퇴적물처럼 겹겹이 쌓였다. 마치 먼 옛날에 일어났던 일 같다. 나는 망설임 없이 가장 최근에 생긴 껍질을 분리한다. 떼어낸 껍질 조직을 펼쳐본다. 생각보다 조용하다. 그새 먼지가 쌓였다. 뒷걸음치다가 밟았더니 파사삭 부서져 버린다. 손으로 들어 올리니 하얀 가루가 떨어진다. 결국 나는 연구자와 같은 마음으로 이미 보았던 것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The time I spent in anxiety has accumulated like sediment. It feels like it happened in the distant past. Without hesitation, I separate the latest layer that has formed. I unfold the peeled tissue. It's quieter than I expected. The dust has already settled. Stepping back, I accidentally crush the brittle remains under my feet. White powder falls when I lift it with my hands. Finally, with a scientist’s mind, I peer into what I've seen before and examine it again.
6월 7일 ~ 18일, 2023, ⟪불안이 낳은 껍질⟫ 개인전, WWW SPACE, 서울, 대한민국
June 7th ~ 18th 2023, "Peels Derived From Anxiety" solo exhibition, WWW SPACE, Seoul, South Korea









전시: ⟪불안이 낳은 껍질⟫
일시: 2023. 06. 07(수) — 06. 18(일)
장소: www space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 6길 37, 지하 1층)
참여 작가: 이유림 (@youlimlee)
전시 서문: 이여로 (@ee_yeoro)
디자인: 이유림
지원: WWW SPACE (@www__space)
최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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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에 대해 생각하자면 알맹이가 먼저 떠오른다. 대체로 껍질은 그 안에 들었을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는 껍질을 깨부수고 태어난다. 허물을 벗고 나아가며, 각질은 탈락되고 새살이 돋는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묻듯, 그렇다면 당최 껍질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냐고, 이 전시는 그에 대해 말하려는 것 같다.
전시장에 있는 크고 작은 껍질은 탈락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바짝 말라있고 굳어있으며, 오그라들어 있고 비틀려있다. 얼룩져있고 불순물이 섞여 있으며 거칠다. 그 모습은 꼭 오래된 건물에서 뜯겨져나온 낡은 페인트 조각 같기도 하고, 엄동설한에 젖은 채로 버려져 그대로 굳은 옷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이미지의 반복은 껍질이란 결국 남겨지는 종류의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만 같다. 껍질을 찢고 나온 알맹이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과 반대로, 그리고는 자아실현을 위해 또는 행복을 좇기 위해 이주하는 것과 반대로 말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알맹이의 여정이 자연스럽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생존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때에 추동된다. 하나였던 알맹이와 껍질은 분리되기로 하고, 알맹이는 껍질을 두고 나아가기로 한다. 성공신화를 따르지 않으면 배제되는 세태 속에서, 매 순간 배워서 더 나은 미래의 내가 되어야만 한다는 조급함 속에서 그렇게 한다. 그러니 껍질이 탄생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살아남기 위해 불안에 떠는 바로 이때가 아닐까?
전시장에 늘어선 껍질을 바라보며 나는 껍질이 태어나고 버려진 그 모든 시간과 서사를 상상한다. 동시에 더 이상 나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는, 지금 이 순간의 상태에 빠져든다. 불안이 휩쓸고 간 자리는 더 이상 시간이 흐르지 않고 멈춰버린 것만 같다. 버려진 시간은 '중지된 시간'으로 느껴진다. 작금의 현실에서 그저 멈추기로, 그대로 두기로 마음먹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곱씹으며, 나는 껍질들과 함께 이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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